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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의 역사

15세기 이탈리아 궁정의 카드 게임에서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점술 기호까지 — 타로 카드 오백 년의 변화.

15세기 이탈리아의 기원

타로 카드는 15세기 전반 북이탈리아에서 태어났고, 처음에는 순수한 카드 게임이었어요. 점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죠. 핵심이 된 혁신은 기존의 네 수트(컵, 소드, 완드, 펜타클)에 '트리온피'(trionfi, 곧 '승리'라는 뜻)라 불린 으뜸패 한 벌을 더한 것이고, 이 개념은 훗날 영어의 "trump"로 이어졌어요. 완전한 타로 덱은 78장으로 이루어져요. 56장의 수트 카드(킹, 퀸, 나이트, 페이지를 네 수트에 각각 배치해 수트마다 14장)에, 그림을 넣은 으뜸패 21장과 바보 카드 1장(matto, 만능패)을 더한 구성이죠.

타로에 관한 가장 이른 문헌 기록은 1440~1450년대에 집중돼 있고, 베네치아와 밀라노, 피렌체, 우르비노 네 도시에 걸쳐 있어요. 1440년 9월 16일, 피렌체의 공증인 주스토 주스티(Giusto Giusti)의 장부에 이 카드놀이를 가리키는 말로 trionfi가 처음 등장했고, 1442년 페라라의 문서에도 "carte da trionfi"라는 기록이 보여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타로 실물은 모두 15세기 중반 밀라노 궁정 화가 보니파초 벰보(Bonifacio Bembo)의 공방에서 나왔어요. 예일대학교 바이네케 도서관(Beinecke Library)이 소장한 비스콘티 패(현존 69장), 뉴욕 모건 도서관(Morgan Library)과 베르가모 아카데미아 카라라(Accademia Carrara)가 나눠 소장한 비스콘티-스포르차 패, 그리고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의 브람빌라(Brambilla) 패가 그것이에요. 이 정교한 수작업 카드는 귀족을 위해 맞춘 고급품이었고, 대중의 오락 도구가 아니었어요.

유럽으로의 전파와 마르세유형의 정립

1494년에서 1522년에 걸친 이탈리아 전쟁이 타로를 프랑스와 스위스로 옮겨 놓았어요. 1534년 라블레(Rabelais)가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이른 타로 기록을 남겼죠. 17세기에는 타로 카드놀이가 대단히 유행해서, 1622년의 기록에 따르면 체스보다 인기가 있었다고 해요.

1639년 필리프 바시에(Philippe Vachier)의 덱이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이른 '마르세유형' 타로 실물이 되었어요. 이어 파리의 장인 장 노블레(Jean Noblet)가 1659년에서 1681년 무렵 만든 덱(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현존 73장)이 마르세유형의 도상 전통을 세웠죠. 짚어 둘 것은 "Tarot de Marseille"(마르세유 타로)라는 이름 자체가 원래 19세기 학자와 비술가들이 붙인 것이라는 점이에요. 국제 카드 협회(IPCS)가 지적하듯, 이 형식이 가장 번성한 곳은 마르세유가 아니라 리옹이었어요.

18세기 초 프랑스의 입법은 수많은 카드 형식의 표준화를 밀어붙였어요. 피렌체에서는 민키아테(Minchiate, 97장으로 늘린 형식), 볼로냐에서는 타로키노(Tarocchino, 62장으로 줄인 형식) 같은 지역 변형이 생겼지만, 78장이라는 표준 구성이 줄곧 주류였어요.

참고: 'Tarot de Marseille'(마르세유 타로)라는 이름은 19세기 학자와 신비주의자들이 붙인 것으로, 이 카드 형태가 처음 번성한 곳은 마르세유가 아니라 프랑스 리옹이에요(국제 카드 협회 IPCS).

18세기 신비학의 재구성

타로와 신비학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은 1781년이에요. 프랑스 학자 앙투안 쿠르 드 제블랭(Antoine Court de Gébelin)은 『Le Monde primitif』 제8권에 "Du Jeu des Tarots"를 실어, 타로 카드가 고대 이집트 사제들이 『토트의 서』(Book of Thoth)의 지혜를 숨겨 놓은 산물이라고 주장했어요. 이 주장에는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어요. 당시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조차 없었으니까요(샹폴리옹의 해독은 1822년을 기다려야 했어요). 같은 권에 실린 Comte de Mellet의 논문은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를 22개의 히브리 문자에 대응시켜, 타로와 카발라를 처음으로 연결했어요.

타로 점을 실제 실천으로 옮긴 사람은 장바티스트 알리에트(Jean-Baptiste Alliette, 필명 에테이야/Etteilla, 1738–1791)예요. 그는 1783년에서 1785년 사이에 『Manière de se récréer avec le jeu de cartes nommées tarots』를 펴냈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타로 점 전용 저술이에요. 1788년에는 '토트의 서 해석자 협회'를 세웠고, 1789년 무렵 점 전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타로 덱을 출간했죠. 점에 쓰였다는 증거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실은 1750년 무렵 볼로냐 타로의 점술적 의미를 적은 익명 필사본으로, 제블랭의 이집트 기원설보다 조금 앞서요. 그래서 더 정확한 표현은 이래요. 타로 점은 18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산발적으로 나타났고, 1780년대 파리에서 체계화되어 대중으로 퍼져 나갔어요.

19세기 프랑스 신비학과 황금새벽회

엘리파스 레비(Éliphas Lévi, 본명 Alphonse Louis Constant, 1810–1875)는 타로를 하나의 마법 체계 안에 통합한 결정적 인물이에요. 1854년과 1856년에 나눠 출간한 『Dogme et Rituel de la Haute Magie』에서,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와 카발라, 네 원소, 히브리 문자 사이의 대응 관계를 처음으로 분명히 세웠죠. 예를 들어 '마술사'를 Aleph에, '여교황'을 Beth에 대응시켰어요. 레비의 사상은 훗날 황금새벽회와 알레이스터 크롤리(Aleister Crowley)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어요.

1886년 A. E. 웨이트(A. E. Waite)가 레비의 저작을 영어로 옮기면서 타로는 정식으로 영국에 들어갔어요. 이듬해인 1887년 런던에서 황금새벽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가 세워졌고, 1888년에는 첫 정식 회당(Isis-Urania)이 문을 열었죠. 이 신비학 단체의 교리 과정은 카발라와 점성술, 연금술, 그리고 타로 점까지 아울렀어요. 1891년 웨이트가 입회했고, 1901년에는 W. B. 예이츠(W. B. Yeats)의 소개로 패멀라 콜먼 스미스(Pamela Colman Smith)가 합류했어요. 훗날 현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타로 덱을 함께 만들어 낼 두 회원이었죠.

1909년: 라이더–웨이트–스미스 덱

1909년 12월, 런던의 출판사 William Rider & Son이 펴낸 라이더–웨이트 타로(Rider–Waite Tarot, 웨이트–스미스 또는 라이더–웨이트–스미스로도 불리며 약칭 RWS)가 정식으로 세상에 나왔어요. 이 덱은 A. E. 웨이트(1857–1942)가 설계하고 패멀라 콜먼 스미스(1878–1951)가 그렸으며, 두 사람 모두 황금새벽회 회원이었어요.

RWS의 혁신은 78장 모두에 완전한 장면 그림이 주어졌다는 점이에요. 그전까지 점용 타로는 보통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에만 그림이 있었고, 마이너 아르카나는 단순한 수트 기호뿐이었어요. 이 혁신 덕분에 쓰는 사람은 그림에서 직감적으로 카드 의미를 읽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입문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죠. 웨이트는 1909년에 해설서 『The Key to the Tarot』을 냈고, 1911년에는 더 자세한 『The Pictorial Key to the Tarot』으로 개정했어요.

RWS는 현대 타로의 본보기라고 할 만해요. 이후 한 세기가 넘는 동안 타로 디자인의 압도적 다수가 이 영향을 깊이 받았죠. 추정에 따르면 RWS와 그 파생판은 전 세계에 1억 벌 넘게 유통되었고 20여 개국에서 발행되었으며, 지금도 가장 널리 쓰이는 타로 체계로 남아 있어요.

20세기의 대중화

또 하나 영향력이 큰 덱은 토트 타로(Thoth Tarot)예요. 알레이스터 크롤리(1875–1947)가 구상하고 레이디 프리다 해리스(Lady Frieda Harris, 1877–1962)가 그렸죠. 두 사람은 1938년에서 1943년에 걸쳐 78장의 그림을 완성했는데, 당초 계획은 6개월이었지만 실제로는 5년이 걸렸어요. 크롤리의 해설서 『The Book of Thoth』는 1944년 3월에 출간되었지만(한정 200부, 서명본), 덱 자체는 두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인쇄되지 않았어요. 토트 타로의 첫 인쇄판은 1968년(미국 Sangreal)에 나타났고, 상업 출판은 1969년 O.T.O.가 주선했으며, Llewellyn의 컬러판은 1972년에서 1973년 사이에 세상에 나왔어요.

미국 시장에서 타로가 대중화된 것은 스튜어트 R. 캐플런(Stuart R. Kaplan)에서 시작해요. 그는 1968년 U.S. Games Systems를 세우고 1971년 라이더–웨이트판의 출판권을 얻었는데, 이것이 미국 타로 출판의 출발점이 되었죠. 이후 캐플런은 여러 권짜리 『Encyclopedia of Tarot』 같은 참고서를 엮어 영어권에서 타로가 퍼지는 일을 밀어붙였어요.

1970년대에 일어난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은 타로를 신비학의 도구에서 '자기 탐구와 치유의 매체'로 다시 자리매김하며 주류 문화 안으로 끌어들였어요. 현대의 세 가지 주류 신비학 타로 체계, 그러니까 마르세유 타로와 라이더–웨이트, 토트의 구도가 여기서 굳어졌죠.

학술적 합의와 통속 신화

타로의 역사에 대해 학계에는 이미 분명한 합의가 있어요. 타로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했고 본래 모습은 순수한 카드 게임이었으며, 18세기 이전에 점에 쓰였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죠. '이집트 기원', '토트의 서', '집시를 거쳐 전래' 같은 속설은 모두 18세기 말 이후 비술가들이 만들어 낸 산물이에요.

타로 학술 연구의 토대를 놓은 사람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논리학 교수 마이클 더밋(Michael Dummett, 1925–2011)이에요. 1980년에 펴낸 『The Game of Tarot: From Ferrara to Salt Lake City』는 타로의 15세기 이탈리아 기원을 확정하고, 이후의 모든 타로 카드 게임 연구에 기초를 주었죠. 더밋은 이렇게 날카롭게 말했어요. 타로 카드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전 공작의 대상이었다…… 허구의 역사와 카드에 대한 허구의 해석이 비술가들에 의해 날조되었고, 그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사실로 믿게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Britannica)의 정리가 가장 간결해요. "타로 카드는 처음에 카드 게임으로 쓰였고, 18세기에 신비학적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점에 널리 쓰인다." 이 세 문장이 타로의 다섯 세기에 걸친 변천, 그러니까 이탈리아 궁정의 오락 도구에서 현대 세계에 퍼진 문화 기호까지를 압축해요.